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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1987'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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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1987'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7.12.14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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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OWN

UP
- 진실과 허구의 적절한 배합
- 뛰어난 배우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캐릭터들
-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

DOWN
- 김태리와 강동원의 로맨스, 글쎄요?

[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영화 ‘1987’은 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켜 지구를 지켜내지도 않는다. 화려한 액션도 없고, 속도감도 빠르지 않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1987’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영웅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영화 '1987'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30년 전 일어난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너무나 황당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말 한 마디로 표현돼 왔다. 이 사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을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획을 긋기도 했다.

3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이 사건은 영화 ‘1987’(감독 장준환)로 찾아왔다. 이 영화는 아주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힘 있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영화 ‘1987’은 1987년 1월 남영동에서 서울대학교 재학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하는 장면을 그리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박처장(김윤석)은 시신 화장을 지시하지만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며 시신을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탁 치니 억’이라는 말을 꺼내며 단순 쇼크사로 마무리하려 하지만 윤기자(이희준)는 박종철 군의 시신을 가장 먼저 봤던 의사 오연상의 주요 증언을 얻어내며 ‘물고문 중 질식사’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결국 김윤석은 조반장(박희순)을 포함한 경찰 두 명에게 책임을 물어 교도소로 보내게 되고, 남영동 사람들의 모습을 교도소에서 보게 되는 한병용(유해진)은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 조카 연희(김태리)를 이용하게 된다. 결국 일련의 사건들은 역사에 쓰여진 것처럼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전국에 알리게 되는 바탕이 되고, 이는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된다.

 

영화 '1987'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장황한 사건들은 장준환 감독의 손을 거치며 정리된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부터 6월항쟁까지 흐르는 일련의 시간들은 ‘1987’ 속에서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그려진다. 특히 박종철 군의 죽음을 알게 된 가족들의 처절하고 허망한 모습을 제3자인 하정우와 이희준의 시각을 따라 담아내며 관객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중심이 되는 사건인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6월항쟁 뿐 아니라 ‘1987’은 영화를 통해 80년 광주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5.3인천사태, 호헌 선언과 보도지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현대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극 초반 남영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던 ‘1987’은 후반부가 되면 김태리와 같은 대학생들, 재야인사, 교도관 등 평범하지만 용기 있는 자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힘을 원동력으로 전개를 이어간다.

극중 유일한 허구적 인물인 김태리는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뚜렷한 정치적 신념과 기준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가족에 대한 사랑, 심리적으로 의지했던 인물의 죽음 등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영화 '1987'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칫 캐릭터가 밋밋하고 매력 없게 그려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김태리는 꽤나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장준환 감독은 김태리를 통해 1987년을 산 보통의 사람들을 표현해 내는데 성공한다.

‘1987’은 김태리 뿐 아니라 하정우와 유해진, 교도소장 등 다양한 직업과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각 캐릭터들의 서사를 완성시킨다.

영화 ‘1987’에는 김윤석 하정우 이희준 박희순 김태리 유해진 뿐 아니라 박경혜 김의성 김종수 오달수 고창석 문성근 우현 조우진 설경구 등 최고의 배우들이 참여했다. 특히 출연 결정 이후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여진구와 강동원의 열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종철 열사로 분하는 여진구는 비극적 상황을 뛰어나게 표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며 등장하는 강동원은 특별출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후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6월항쟁을 잇기 위해 선택한 장치가 김태리와 강동원의 로맨스라는 점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극 흐름에 방해될 수준은 아니지만 미묘한 이질감을 더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 '1987'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은 상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보이는 자잘한 소품부터 당시 민중가요로 불렸던 노래들, 엔딩크레딧에 이르기까지 모두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엔딩크레딧 시작과 함께 특별한 지칭어 없이 등장하는 여진구와 강동원의 이름은 알 수 없는 묵직함을 선사한다.

영화는 2016년과 2017년의 광장이 1987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광장의 모습이 30년 전 모습과 겹쳐지는 순간 우리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 우리 현대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1987’은 80년대를 다룬 역사 영화가 늘 그렇듯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을 위로한다. 이와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대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영화 ‘1987’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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