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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⑫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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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⑫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2.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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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3년 반만에 돌아온 고향에서의 한 달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관광객 콘셉트로 사진을 찍었다. 구매대행사이트에 올리는 피팅사진으로 썼고 뉴욕 생활비를 조금 충당할 수 있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문득 지난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에이전시 계약과 함께 모델 비자를 발급받고 이제 본격적으로 모델일을 할 일만 남았는데,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한 달을 보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한 달만에 허리는 28~29 인치로 늘었고, 몸무게는 8kg이 쪘으며, 허벅지를 비롯해 전체적인 사이즈가 커져 버렸다. 갸름했던 턱 선은 밋밋해졌고 둥글둥글했던 얼굴은 더욱 더 큰 원을 그렸다.

한 달 동안 매일 음식과 술 조절을 하지 않았던 나는 피부에도 온갖 트러블이 생겼고, 모델의 몸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6개월 정도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며 나에게는 ’식탐’ 이라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음식 앞에서 조절할 수 없었고 극도의 흥분 상태로 내 양 보다 더 많이 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LA에서 런웨이 모델 일을 시작하기 전 운동으로 몸매를 만들어 보았기 때문에 다시 살을 빼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뉴욕으로 다시 건너 갔고, 소호(Soho)에 있는 에이전시로 곧장 달려갔다. 그러나 나를 기다린 건 냉정한 현실이었다.

▲ 뉴욕 센트럴 파크 주변에는 이렇게 말들이 많다. 멋있지만 냄새가 엄청 심하다 사실은, 이 사진 또한 관광객 콘셉트로 찍은 피팅사진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이런 몸매인 모델에게는 일을 줄 수 없어요!"

캐스팅 디렉터는 나를 보자 마자 정색한 얼굴로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나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내가 어떻게 뉴욕까지 와서 힘들게 에이전시와 계약을 했는데 한 달 동안 본분을 망각한 채 먹고 마시기만 했다니…."

인간이라는 동물은 정말 이기적이다. ‘나’ 라는 존재도 그랬다.

‘런웨이 모델’이라는 꿈을 가지고 노력한 세월들을 까맣게 잊은 채 뉴욕에서 큰 산을 넘었다고 안도하며 별 생각없이 쉽고 편하게 생활한 것이었다.

‘나’ 라는 인간은 배가 부르면 안되나 보다. 배가 고프고 결핍이 있어야 노력하고 성장을 하는데, 안정이 되면 게을러 지니 말이다.

그렇게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합법적으로 모델임을 인정받고 에이전시에서 편하게 주는 일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다시 나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뭐든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가 채찍질하지 않으면 항상 지체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10년 4월 뉴욕으로 돌아간 나는 맨해튼에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몇 주간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다.

나는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식단 조절과 운동을 시작하며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뉴욕 동쪽 끝 25번가 고층 아파트에 살 때 거실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뉴요커란 이런 거구나 하며 행복했다. 행복이란 멀리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모델일을 하며 사는 그 순간이 행복이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 사람 중에 필라테스 강사가 있었다.

내가 운동하는 것을 보더니 자세를 잡아주었고 동갑이었던 그녀와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C브랜드에서 나오는 셀룰라이트 제거 크림을 바르고 운동하라고 조언해 주었고, 호흡을 이용한 복부, 허벅지 운동으로 보다 빠르게 몸매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24인치에서 28인치로 늘어난 내 허리는 음식 과다 섭취로 위가 늘어나 갈비뼈가 벌어져 있었다. 호흡을 이용해 갈비뼈를 닫아주고 복부 운동을 하니 조금씩 허리 사이즈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마른 체형이어서 항상 주위 사람들로부터 ‘타고난 살 안 찌는 체질’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과다한 식탐이 생겨 체질은 변했고 살은 잘 빠지지 않았다. 빨리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만 조급해져 더욱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에이전시의 소속이 되어 조금씩 삶의 불안감이 해소될 때 쯤, 나는 맨해튼의 가장 동쪽 지역인 25번가에 있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뉴욕의 물가는 비쌌다. 비용 절약을 위해 한국인 하우스 메이트들과 함께 뉴욕 생활을 시작했다. 맨해튼 미드타운에 거주하게 되니 진정한 뉴요커가 된 것 같았다.

▲ 뉴욕에서 모델 친구들과 찍은 사진. 제일 오른쪽이 나다. 한국에 다녀와서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상태다. 우리는 샐러드바에 가서 자주 수다를 떨며 함께 꿈을 꾸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의 다이어트는 하루 하루 이어졌고, 지독한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했다.

아침 6시가 되지 않은 시각에 배가 고파서 눈을 뜨곤 했다. 매일 저녁 6시 이후로는 금식을 하기 때문에 배고픔에 지쳐서 잠이 들었고, 아침은 배가 고파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면 식탐이 생기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전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었다. 일어나자마자 베이컨을 굽고 치즈로 배를 채웠다.

샐러드의 드레싱은 칼로리가 낮은 것으로 선택했으며, 사과 한 개와 약간의 미국식 아침을 먹고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맨해튼 거리를 뛰며 뉴욕에 간 이유를 다시 되새기기 시작했다.

항상 휴대폰에는 메모를 하였고 다짐을 적었다. ‘모델이 되리라’고 LA에서 처음에 했던 다짐을 틈틈이 읽으며 되새겼다.

'나는 전 세계적인 모델이 된다.' '케이트 모스의 키도 나보다 작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샤넬의  뮤즈가 된다.' '뉴욕에서 가장 큰 건물에 나의 사진이 걸린다.' '사진 작가 스티븐 마이젤과 작업을 한다.'

LA에서 했던 이런 다짐들을 본 친구는 말도 안 된다며 나를 비웃었지만 나는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했다.

그렇게 매일 운동을 하니 조금씩 몸매는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는 정말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고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으며 끔찍한 나날이었다.

조금씩 몸매의 균형을 잡아가니 뉴욕 생활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 정말 죽을 만큼 운동하여 몸매를 다시 가꿀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다이어트란 걸 하고 싶지 않을 만큼.힘든 과정을 겪은 후 모델 생활을 할 때 너무 행복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에이전시 소속이 아닐 때에는 매일 구글링과 모델 커뮤니티를 통해 모델 구인광고를 찾아서 다녀야만 했다. 상업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일을 할 수 없었으며 모델료도 많이 받지 못했다.

하지만, 뉴욕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니 조금은 편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때와 비교하면 꿈만 같았다.

매일 새벽 6시에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하루의 스캐줄을 보내주는 것이다.

나는 그 스케줄에 적힌 주소로 가서 오디션을 보면 됐고, 오디션 없이 잡혀 있는 일들은 바로 하면 되었다.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포트폴리오도 캐스팅 디렉터가 만들어 주었고 정리해 주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헤어 컬러와 길이, 모든 나의 이미지는 캐스팅 디렉터와 상의한 후에 바꿀 수 있었고, 모든 스케줄 또한 상의한 후 진행되었다.

캐스팅 인터뷰를 다닐 때 나는 칼로리는 높으나 배가 나오지 않는 땅콩버터, 치즈, 다크 초콜릿을 먹고 나갔다.

또 활동하면서 여러 모델 친구들이 생겼고, 한국인 모델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뉴욕에서 함께 일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 요즘 한국에서 방송과 패션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친구들도 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또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모델 에이전시에서 만난 친구와 캐스팅 인터뷰를 위해 함께 다닐 때면 우리는 항상 먹는 시간이 낙이었다.

샐러드 전문점에서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로 허기를 달랬으며, 항상 사진을 찍고 모델일에 관해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주었다.

▲ 맨해튼에 살 때, 집앞 공원에서는 이렇게 비키니를 입고 선탠을 즐긴다. 나도 영어 공부를 하며 뉴욕의 햇살을 즐겼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겨울철 눈이 쌓인 날에도 꿈을 위해 캐스팅 인터뷰를 다니며 추위를 달랬고, 가끔은 뉴욕의 첼시에 있는 클럽에 가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스케줄 이외의 시간은 자유였다. 뉴요커가 된 나는 집 앞 공원이나 센트럴 파크에서 비키니만 입은 채 선탠을 즐겼다. 드디어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다.

뉴욕은 워낙 물가가 비싸서 보통의 모델들은 평소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소호에는 여러 브랜드들이 있어 모델들이 일을 많이 할 수 있는데, H 브랜드와 A 브랜드에서 특히 모델을 많이 고용했다.

내가 소속 되어 있는 에이전시에서 나를 추천해 주었는데 나는 이미지가 맞지 않아서 일을 못하게 되었다.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구매대행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생활비를 버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기존에 닫아 놓았던 ‘러브베베’ 사이트를 구매대행 콘셉트로 개편하고, 한국 내 미입점 브랜드들을 구매대행했다.

뉴욕은 워낙 바쁜 도시여서 LA처럼 삼각대를 들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는 방법이었다.

뉴욕은 여행자들이 많으니 나 또한 여행자인 척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피팅 사진을 찍었고 뉴욕에서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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