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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⑬ 화려한 20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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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⑬ 화려한 20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며...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2.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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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매일 에이전시에서 하루 3개 이상의 캐스팅 오디션 일정을 보내 주었는데, 참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유명 디자이너들의 오디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며, 많은 메이저 일들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뉴욕 생활이었다.

▲ 나와의 사진 작업을 위해 영국에서 온 포토그래퍼 앤디와 센트럴파크 앞에서 작업한 사진이다.  세계 패션 중심지인 뉴욕으로 나를 찾아온 예술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다른 모델들보다 ‘작은 키’의  결점을 가지고 있어서 패션쇼 오디션에는 더 많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잡지모델로 시작한 터라 사진 촬영 작업은 여느 모델들보다 다양한 잡지 촬영 경험을 살려 잘할 수 있었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 때에는 정말 많은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뉴욕에서의 유명 디자이너 패션쇼도 당연히 키가 크고 날씬한 모델들 순으로 선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나에게는 패션쇼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현실에 비참했었다. 하지만, LA를 비롯한 뉴욕에서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 모델 선택이 안 되었을 때에는 아쉽지만 후회가 없었다.

쿠스토 바르셀로나(Custo Barcelona) 오디션에서는 디자이너가 나에게만 두 번의 워킹 기회를 주었다. 비록 오디션은 떨어졌지만 고마웠다.

그때가 마음의 여유를 찾은 때인 것 같다. 지금도 뉴욕에서의 힘들었지만 값진 시간들은 내 인생에 질 좋은 양분과도 같다.

어릴적 꿈인 모델을 시작하며 수없이 오디션을 보고 많이 떨어지면서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나는 모델로서 자질이 부족한가?’,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모델활동을 하면서 나에게도 기회가 자주 주어졌고 나를 모델로 고용하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 것 같다.

▲ 코스메틱 전문 포토그래퍼 루디가 촬영한 욕조 장면이다. 포즈, 표정, 감정, 소품인 나뭇잎까지, 어렵게 완성된 화보작업이었지만 정말 뿌듯한 내 사진이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아… 내가 모델로서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니야.’ ‘단지 그 브랜드와 내 이미지가 맞지 않을 뿐이야.’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말라고 했던가…. 나는 요즘도 광고 미팅을 가끔 다니지만 오디션에 떨어져도 미련을 금방 떨칠 수 있다. 기회는 또 올 것이고, 나의 운명이 아니어서 비켜간다고 생각한다.

모델 후배들에게 상담을 해 줄 때면 옛날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오디션도 자꾸 떨어지고 주위 모델 친구들은 나보다 더 잘되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요.”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다 안다. 불안하고 힘들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속이 탄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오디션에 미련을 두지 말고 자기 개발을 더 하라고 조언한다. 또 다시 기회는 올 것이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은 꼭 이루어 진다고…

그렇게 조언을 해주면서도 나 역시 새로운 꿈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불안할 때가 있다.

‘모델’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 갈 때에는 나이도 어렸고 무작정 덤비는 패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좀 더 초조해지고 신중해졌다고 해야 할까. 여유를 가지자고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또 한 해를 맞이하려고 하니 스스로 불안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도 20대 때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간다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새로운 꿈을 이룬 모습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 중국 디자이너 청(Cheng)의 쇼가 끝나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모델들 중 검정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다. 한편으로는 미국내 중국의 위상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LA에서 패션위크가 끝나고 세계3대 패션위크 책자에 내 사진이 없어서 무작정 뉴욕행을 꿈꾸었지만, 뉴욕에서 패션위크 무대에 선다는 것은 키 작은 나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주관하는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메인 모델로 그다지 활약할 수 없었다. 전세계에서 날아와 뉴욕 무대에 선 대부분의 모델들에 비해 키가 현저히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메인 쇼를 앞두고 VIP 고객들의 파티 겸 프레젠테이션 쇼를 할 때 자주 모델로 고용되었으며, 패션위크 때에는 뉴욕 패션인들의 축제였기에 여러 군소 디자이너의 패션쇼에도 설 수 있었다.

중국 출신 디자이너의 쇼 무대에 선 날은 취재기자들이 몰려 와 쇼가 끝나고도 사진 촬영이 계속되었다. 그때 중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  캐롤리나 즈말락(Karolina Zmarlak) 프레젠테이션 쇼가 끝나고는 화려한 뉴욕 상류층들과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같은 모델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멋지게 메이크업하고 의상을 걸치고 무대를 끝냈지만, 파티 분위기에 젖은 상류층 관객들은 모델들과는 아주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 멋진 다국적 모델들과 함께 작업한 브라질 수영복 화보 촬영 중 한 장면이다. 아시안 모델이어서 더 눈에 띌 수 있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뉴욕에서도 유명 브랜드 패션쇼 모델로 활동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사진 모델로서 더 많은 일이 들어왔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아베다(AVEDA) 화보를 찍은 날에는 정말 패션위크 무대에 선 어느 모델도 부럽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나는 사진 모델로서 가치를 더 인정받는데, “넌 키가 작아서”라는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겨서 런웨이 모델을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체형 조건 때문에 패션쇼보다는 잡지모델 활동을 해서 그런지 사진 모델로서의 촬영에 대한 목마름은 없었다.

그런데 뉴욕에서의 촬영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고, 모델이라는 삶을 사는 것에 행복하고 감사했다. 또한 여러 포토그래퍼들과 함께한 사진 작업들이 나에게는 지금껏 보물로 남아 있다.

내 포트폴리오를 본 뒤 나를 촬영하고 싶다고 영국에서 온 포토그래퍼 앤디(Andy)는 새하얀 눈이 내린 겨울에 센트럴파크와 뉴욕 거리에서 셔터를 눌렀고, 코스메틱 전문 포토그래퍼 루디(Rudy)는 욕조 안에 담근 내 몸을 아름답게 남겨주었다.

다이어트하고 있을 당시 좀 더 어리고 풋풋한 모습 그대로를 담아준 포토그래퍼  레티샤(Leticia),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촬영했던 마크(Mark), 다국적 모델들과 브라질 디자이너의 수영복 화보를 촬영할 수 있게 했던 패션디렉터 로이(Roy) 등등….

뉴욕에서의 수많은 사진 작업들은 다시 오지 않을 나의 20대 마지막 페이지를 멋진 추억으로 장식해 주었다.

그렇게 30대 초반이 되어서도 나는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고 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아베다(Aveda) 뷰티 화보 촬영할 때의 모습이다. 촬영 전 셀카를 남겨둔 게 지금은 보물이 되었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프로 모델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20대의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편으로, 앞으로 다가올 30대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패션 사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고 결론을 내렸다.

20대 중반 무작정 덤볐던 온라인 쇼핑몰 창업의 성공을 훌훌 던져버리고 런웨이 모델이라는 ‘꿈’을 쫓던 나에게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위 친구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지금쯤 꿀물이 줄줄 흐를텐데….”  “왜 그걸 버리고 너는 그렇게 사는 거냐?”

그때도 이런 말을 들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돈이란 건 언제든 마음 먹으면 벌 수 있지만, 내 꿈인 ‘모델’에 대한 도전은 가능할 때가 있고, 그때가 지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초의 꿈처럼 세계적인 모델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토록 하고 싶고 꿈꿔왔던 ‘모델’을 향해 돌직구처럼 달려온 도전은 한번 사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그래서 나는 20대에 미련이 없으며 그 누구보다 20대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미련이 없기에 30대의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40대, 50대의 삶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꿈이 있다면, 앞뒤 재지 말고 무작정 덤비는 게 최고의 방법인 것 같다.

20대에 미련을 남기지 않은 나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며,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어서 계속 행운이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다.

뉴욕에서 내 꿈의 목마름이 해소될 때쯤 LA에서 의류 사업도 다시 하며 살게 되었고, 모델 비자 만료 시일이 다가오면서 고향에 돌아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2년 가을, 그렇게 6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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