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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리틀야구 구원투수' 한영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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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리틀야구 구원투수' 한영관 회장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8.26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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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세계정복]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 "국제 교류전, 지방팀 지원책 필요"

[스포츠Q 민기홍 기자] “늘 이 시간을 꿈꿔왔다. 이것은 절반의 성공이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금의환향해주길 기원한다.”

한국리틀야구연맹은 지난달 29년만에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을 통과하고 세계대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나서는 12세 이하 리틀야구 대표팀을 격려하고 선전을 기원하는 성대한 행사를 개최했다. 한영관(65)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며 내심 ‘월드 챔피언’까지 바라고 있었다.

그의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됐다.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지난 25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주 윌리엄스포트의 라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8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최종 결승전에서 미국그룹 우승팀 일리노이주 그레이트 레이크를 8-4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용구장 7개’를 가진 것이 전부인 한국이 미국과 일본, 대만, 푸에르토리코 등 야구 강국들을 줄줄이 물리친 기적에는 한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는 쓰러져가던 리틀야구를 일으켜 세운 '구원투수'였다.

▲ 야구인 출신인 한영관 회장은 아이들이 더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영관 회장이 장충리틀구장에서 용산구 리틀야구단 이경원 군의 스윙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리틀의 구세주, 휘청대던 리틀야구를 살리다 

한국 리틀야구는 한영관 회장 부임 전과 후로 나뉜다. 그의 부임 전 리틀야구연맹 회장직은 5년 동안 공석이었다. 회장이 없는 리틀야구는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나 다름 없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팀은 20여개에 불과했고 장충리틀구장에는 모래바람이 날렸다. 1984년과 1985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던 한국 리틀야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2006년 8월 한 회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 회장은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던 하일성 해설위원으로부터 한국 야구를 위해 봉사할 때가 됐다며 절친한 친구에게 리틀야구와 여자야구 중 하나를 택해 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회장은 성동고 시절 함께 야구를 했던 하일성 해설위원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성동고, 고려대를 거쳐 한일은행에서 선수로 뛰었던 야구인 한 회장은 한국 야구의 뿌리를 튼실히 다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조금의 망설임 없이 리틀야구를 선택했다.

그는 우선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원금으로 장충리틀구장을 리모델링했다. 한국 리틀야구의 '성지'나 다름없는 장충구장은 그야말로 폐허나 다름 없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이에 체육진흥공단에서 지원받은 10억원으로 인조 잔디를 깔고 펜스를 교체하며 깔끔하게 구장을 바꿨다. 또 휠라, 아시아나항공 등의 후원을 받아내 대회를 늘려나갔고 광고도 유치했다.

▲ 한영관 리틀야구연맹 회장(왼쪽에서 네번째)이 장충리틀야구장에서 2014 세계리틀야구대회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 동반우승 축하행사에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주장, 학부모 대표 등과 함께 떡 커팅식을 갖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한 회장이 두번째로 한 것은 지자체와 연계해 새로운 팀을 만들어가고 TV 중계를 통해 대중 노출을 많이 하는 일이었다.

한 회장이 처음 리틀야구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하더라도 감독 마음대로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서울 강동구, 송파구, 용산구 등 6~7개 지자체를 찾아가 리틀야구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설득했다.

지자체와 연계한 리틀야구 전략의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어린 학생들이 자치단체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니 홍보효과가 컸다. 지자체들도 하나 둘씩 리틀야구팀을 창단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포츠 케이블 채널을 통해 TV중계를 추진했다. 아이들이 경기하는 모습이 TV에 나오자 학부모들의 관심이 증폭됐고 여기저기서 문의가 폭주했다. 이밖에 매년 3000만원 가량의 사재를 털어 리그 활성화에 힘을 쏟는 한편 심판 비리 척결에도 앞장섰다.

그의 노력으로 리틀야구 팀은 2007년 39개, 2008년 58개, 2009년 81개, 2010년 126개, 현재 160여개로 급격히 불어났다. 올 시즌 전국대회는 12개에 이른다. 매달 있는 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경쟁력이 몰라보게 좋아졌고 이는 세계 제패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 리틀야구연맹 한영관 회장이 장충 리틀야구장에서 열린 2014세계리틀야구대회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 동반우승 축하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새로운 시작, “국제 교류전, 지방팀 지원책 필요” 

“우리 아이들이 큰일했습니다. 대견하고 기특할 따름입니다.”

한영관 회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자신의 숙원을 풀어준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야구장 7개뿐인 현실을 바꿔달라 하는 것은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프라 구축보다는 국제 교류전을 늘려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163개 팀 중 수도권에 80여 개 팀이 집중돼 있다”는 리틀야구 현황을 설명하며 “지방권 팀들이 올라와 경기를 할 때마다 학부모들의 주머니에서 적잖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책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 회장은 “이는 KBO와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볼 문제”라며 “꼭 프로선수가 아니라도 좋다. 야구, 스포츠를 통해 교양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정부의 생각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있고 확실한 장단기 플랜을 가진 수장이 있어 한국 리틀야구의 미래는 더욱 밝아보인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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