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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틀야구의 충청도 돌풍, 그 이유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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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틀야구의 충청도 돌풍, 그 이유와 배경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9.07.02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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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스포츠Q(큐) 글 민기홍·사진 손힘찬 기자] “충청도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기쁘다!”

‘끝내줘유~’란 사투리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최근 리틀야구계엔 충청도 바람이 거세다. 가히 국내 리틀야구 판도의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다.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새달 16일 개막)에 나설 한국 12세 이하(U-12) 리틀야구 대표팀이 전부 대전·충남 출신이기 때문이다.

 

▲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나서는 국가대표. 대전·충청에서 왔다.

 

이민호 대전 중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국내예선에서 서울·경기·인천 선수들로 구성된 쟁쟁한 수도권 팀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리틀야구연맹 관계자들과 전국 170개 리틀야구 지도자들 전부가 화들짝 놀란 대이변이었다.

기세를 올린 '충청 아이들'은 아시아-태평양&중동 지역예선에서 중국(9-3), 괌(11-0), 필리핀(12-1), 태국(20-1), 인도네시아(10-1), 홍콩(9-0), 대만(7-2)을 연파하고 월드시리즈 티켓까지 거머쥐었다. 이제 리틀야구 성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윌리엄스포트로 향한다.

이민호 감독은 “국제대회는 수도권 팀의 전유물이라는 지방 팀의 핸디캡을 딛고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며 “새로운 도전이다. 윌리엄스포트에서 한국 야구의 끈끈함, 정신력을 동반한 기술야구를 보여주고 싶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민호 감독을 헹가래치는 리틀야구 대표팀 선수들.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쐐기 홈런을 날린 정기범의 아버지는 "아이들은 충청도의 자존심이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며 "야구가 잘되려면 충청도뿐 아니라 지방도 평준화돼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윌리엄스포트에서 기적을 쓰길 바라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호 감독의 표현대로다.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이다.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다. 한국은 2014 우승과 2016, 2018 준우승을 차지한 리틀야구 강국인데 그간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하는 대업을 일군 아이들은 전부 수도권 팀 소속이었다.

국내 전국리틀야구대회 성적은 볼 것도 없다. 구리시, 광명시, 군포시, 남양주시, 고양 일산서구, 부천시, 용인 수지구, 의정부시, 수원 영통구(이상 경기), 광진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노원구(이상 서울), 인천 서구 등이 주로 상위권에 포진했다. 부산 서구나 김해시, 양산시 등 부산·경남세가 한동안 거셌지만 지속되지 않았다. 지방팀은 사실상 들러리나 다름없었다.

 

▲ 변방이었던 지방이 해냈다. 대전·충청이 대형사고를 쳤다.

 

이런 구도가 올해 초부터 깨졌다. 조짐이 심상찮았다. 대전·충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대전 한화이글스(화성시장기 2위, 이스턴기 공동 3위), 충남 계룡시(이스턴기 공동 3위), 충북 청주시(화성시장기 공동 3위), 대전 유성구(화성시장기 2위, 도미노피자기 2위), 대전 중구(휠라기 공동 3위), 세종시(U-10 상반기 1위) 등 상위권에 포진하는 횟수가 몰라보게 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야구 한화의 인기가 기폭제로 작용해 리틀야구 저변 확대로 이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리한화(마리화나+한화)’라 불릴 만큼 중독성 짙은 야구를 해준 덕에 신규 단원 모집이 수월해졌다. 고상천 한화이글스 감독은 “대전·충청 야구 열기가 워낙 좋다”며 흐뭇해했고 안상국 세종시 감독은 “한화 덕에 선수 수급이 원활해졌다”고 설명했다.

과정은 이렇다. 프로야구 진출을 꿈꾸는 유망주들이 많아지면 선수 반 규모가 커진다. 자연스레 팀 내 경쟁이 치열해진다. 지도자들은 기본기를 다지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는 탄탄한 수비력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이 생긴 대전·충청 팀들은 교류전을 자주 갖고 실전경험을 더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전국대회를 어렵게 여기지 않게 됐다.

 

▲ 왼쪽부터 안상국 코치, 고상천 코치, 이민호 감독.

 

선순환 구조는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으로 이어졌다. 지도력과 인품을 두루 갖춰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이민호 감독, 고상천 감독, 안상국 감독이 만나 시너지를 냈고 결국 대전·충청은 대형사고(?)를 쳤다. 이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 세계 정복이다. 한국야구의 명예에다 지방의 사명감을 얹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다.

선수들의 사기도 뜨겁다. 정기범은 "처음엔 사소한 파이팅도 안 하고, 의기소침하고, 자신감도 없었는데 다들 고생해보니 결과를 얻었다"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성주는 "전에는 못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되는 구나’"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나진원은 "한 마음으로 뭉쳐 다 같이 고생하니 이겼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세계대회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셋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국내 리틀야구계에 불어 닥친 '충청 돌풍'이 다음 달 중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를 메가톤급 태풍으로 강타할지 지켜봐야할 순간이다.
 

▲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하고 부모님을 향해 큰절하는 선수단.

 

◆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 국가대표 명단

△ 단장 = 박원준(한국리틀야구연맹)
△ 감독 = 이민호(대전 중구)
△ 코치 = 고상천(대전 한화이글스) 안상국(세종시)
△ 선수 = 손원규(대전 유성구) 양수호 현빈 정기범(이상 대전 중구) 임현진(대전 동구) 이시영 박민욱 차정헌(이상 대전 한화이글스) 나진원(충남 계룡시) 유준호 민경준 박준서(이상 세종시) 임성주(충남 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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